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김유나 양은 미국 애리조나에 위치한 미션스쿨에 다니면서 스튜어디스를 꿈꿨습니다. 불운이 닥친 그날, 시험기간이라 바쁘게 지내던 김유나는 다른 때보다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사촌언니가 운전하는 차에 탔는데, 평소엔 앞자리에 탔지만 그날은 동생에게 앞자리를 양보하고 뒷자리에 앉게 되었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과속하던 차량이 김유나 양이 타고 있던 차를 덮쳤고, 앞자리에서는 에어백이 터졌지만 뒷자리에는 에어백이 안 터져 김유나 양은 짧은 신음 소리를 내고 바로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딸의 사고 소식을 들은 김유나 양의 부모님은 제주도에서 미국까지 단번에 달려 갔으며, 그곳에는 뇌사 판정을 받고 의식 없이 호흡기에 의존해 누워있는 딸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제 더이상은 안될 것 같아….” 하하 아버지의 마지막 고백에 세 아이의 아빠인 하하는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매일 딸이 깨어나기만을 바라며 기도하고, 기도하던 어느 날, 김유나 양의 어머니는 신문 기사 하나를 우연히 보았습니다. 뇌질환을 갖고 투병 생활을 하던 한 소녀가 뇌사상태에 빠지자 천주교 신자였던 아버지가 장기기증을 결정해 많은 생명을 살렸다는 내용이었는데요.

김유나 양의 어머니 또한 장기기증을 고민하고 있었지만 차마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을 때, 김유나의 아버지가 “여보, 우리 유나 장기기증…”이라고 먼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어려운 결정 덕분에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전세계 27명이 새 삶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김유나 양은 삼남매의 맏딸로 이해심 많은 딸이었으며, 마음이 깊은 아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유나 양이 생명을 나누고 세상을 떠난 날, 고향인 제주에는 하얀 눈이 내려 하늘과 땅을 가득 채웠습니다.
“유나의 마지막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으니 그 역시 축복이라고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앞으로도 유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유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라고 어머니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또한 김유나 양의 어머니는 “유나가 나눈 사랑이 오래도록 머물기를 바란다”며, 생명을 살리는 기적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이혜영 잊고 새출발 하자 다짐했는데….” 이상민의 새여자 김유리의 ‘XX’했던 실체를 고발합니다







